1990년대의 영화들은 다양했다. 먼저 뉴 웨이브 선배들과는 달리 변화하는 대만 사회를 그리려는 감독들이 있다. 차이 밍량은 도시 청소년들의 풍경과 사랑 이야기를, 리 안은 동양적인 가족의 초상화를 로맨틱 코미디로 풀어나간다. 반면 뉴 웨이브 정신을 이어받아 변화무쌍한 1990년대 사회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 대만 역사를 아직도 꾸준히 탐색하는 쉬 샤오밍과 스텐 라이 같은 감독도 있다.
쉬 샤오밍 감독은 1955년 대만 남부지방 출생이고 예술을 전공하기를 희망했지만 우연히 영화과에 입학한 후 차츰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78년부터 영화 제작 현장에서 일했고, 영화산업이 침체기를 맞던 1983년에는 방송 대본을 쓰기도 했다. 조감독 생활을 하던 중 낙후한 영화계 실정에 실망하고 1990년에 영화계를 떠나 사업을 하기 위해 남부지방으로 떠났다. 1991년에 제작자인 장화군의 제의로 다시 영화계로 돌아와 데뷔작 '천사들의 먼지'를 만들었다. 이 작품으로 칸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받았다.
스텐 라이 감독은 1958년 미국 워싱턴 D.C 출생이다. 1983년에 버클리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대만으로 이주해 국립예술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다. 1984년에 표연공작방을 설립했고, 이 극단은 이내 대만에서 가장 활동적인 극단이 되었다.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들을 영어로 번역해 세계에 알리는 일을 담당하기도 했다.
1990년대 세대 중에는 미처 만나지 못했고 카메라에 담을 여유도 없었지만 다른 감독들도 많이 있다. 그 중 평론가 출신인 천 궈푸 감독은 쉬 샤오밍과 함께 '허우 샤오시엔의 아이' 이다. 허우 샤오시엔은 글만 쓰던 그에게서 연출 능력을 발견하고는 많은 조언과 함께 자신이 운영하는 성시영화사를 통해 데뷔시켰다. 쉬 샤오밍이 대만이라는 지역성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면, 천 궈푸는 더 보편적인 소재를 추구하는 감독이다. 한편 예 홍웨이는 천 궈푸와 다른 자리에 선다. 그는 역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뉴 웨이브 세대와 흡사하지만 대만인의 정체성뿐 아니라 중국인 전체로 관심을 넓힌다는 점에서 그들보다 큰 야망을 스크린에 담고 있다.
뉴 웨이브 선배들의 활동도 여전히 활발하다. 시나리오 작가인 샤오 이에는 예 홍웨이의 두 작품에서 각본을 담당하는 등 후배를 돕기에 바쁘고, 우 니엔전도 왕 퉁의 '돌아오지 않는 산하'로 시나리오상을 수상했다. 우 니엔전은 1995년 탄광촌을 배경으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다룬 '아버지'로 감독이 되었다. 허우 샤오시엔과 양 더창은 신작을 칸 영화제에 출품했다.
떠나는 날 아침. 한가하게 짐을 싸려던 취재팀은 부랴부랴 시먼딩으로 나가 거리 풍경과 지나가는 버스에 붙은 극장 광고등 스케치 촬영을 마저 해치울 수밖에 없었다. 날씨가 좋은 날이 며칠 안되는 대만에서 황금 같은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정리해야 할 시간이 왔다. 취재팀은 지금까지 만난 대만 영화인들의 입을 통해 대만 영화가 얼마나 많은 고비를 넘겨왔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왜 대만 영화가 성공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대만인들이 자신의 성공 이유로 꼽은 것은 하나였다. 사람이었다.
대만 영화가 성공한 것은 '사람' 때문이다. 1980년대 뉴 웨이브 감독들은 모든 열정을 바쳐 영화를 만들었다. 모든 것이 취약한 이 땅에서 우리가 성공한 것은 자본도 아니고 산업도, 정책도 아닌 사람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1990년대의 감독들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의 결심, 개인의 능력, 개인의 정서가 좋은 대만 영화를 만들어냈다. 만약 사람들이 노력한다면 영화가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하고 있다.
우리는 사람들의 단결과 역사의 힘 때문에 성공했다. 한국과 대만은 같은 환경에 놓여있다. 나는 평탄한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는 절대 창조력이 생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대만은 정치적, 역사적 변동을 겪었다. 우린 그 역사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가 자유로워졌을 때 창조력을 분출시킬 수 있었다. 나는 한 나라의 문화 중에서 세계로 진출할 가장 값싸고 가장 빠른 방법이 바로 영화라고 믿는다. 우리가 창조적인 영화를 만든다면, 사람들은 대만의 진정한 문화를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만 감독들이 영화를 만드는 자존심이다.
이들 외에도 우리가 만난 영화인들은 한결같이 사람의 중요성,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것이 그들이 말한 전부이자 우리에게 준 유일한 선물이었다. 참 신기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이다 뭐다 떠들어대는 이 시대에 그토록 '촌스러운' 사람들이 아직도 지구상에 있다니. 1990년대에 아직도 역사를 운운하는 사람들이 대만에 있었다. 시대가 바뀌어도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믿는 것을 천천히 응시하는 끈기가 그들에게는 있었다.
대만 영화계는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가 힘을 합쳐 뉴 웨이브를 탄생시켰다. 1990년대의 후배 영화인들은 1980년대와 다른 스타일과 주제 의식으로 2차 뉴 웨이브를 창조했지만, 그들도 대만 역사에 대한 관심은 여전했다. 이처럼 하나의 전통이 쉼 없이 선배에게서 후배에게로 내려오는 영화 국가는 드물 것이다. 대만 영화가 어려움 속에서도 성공한 또 하나의 이유라면 바로 그러한 전통의 힘이 낳은 유대감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대만 영화 기행의 제목을 '역사를 기록하는 카메라'로 정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대만은 더이상 '비정성시'가 아니다. 영화를 통해 자기들의 역사를 새로 써나가고, 외국인의 기억에 사라진 자신들의 나라를 영화 속에 새로 세우는 그들의 나라는 '역사성시'이다. 그들은 가족을, 기억을, 역사를, 자신들을 영화에 담는다. 영화를 통해 한 나라의 건국 신화를 다시 만들고 있는 곳이 바로 대만뿐이라는 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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