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에서 뉴 웨이브 영화가 출현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는 사회의 요구를 얼마나 소화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1980년대 이전의 대만 영화는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현실 도피적인 것들이 주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관객들은 영화 속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남녀의 사랑 이야기 같은 환상만을 추구했다. 하지만 그들은 조금씩 변화를 갈망했다. 뉴 웨이브가 출현한 까닭은 대만인 스스로가 자신의 모습을 영화 속에서 발견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수출이 증대하고 경제가 발전하는 과정 속에서 대만의 중산계급에 속하는 신세대 지식인들, 젊은 감독들이 배출되었다. 그들은 중국 본토에서 이주해온 세대가 아니라 대만에서 태어나고 자란 20, 30대로 영화에 대한 새로운 열망에 가득 차 있었다. 영화가 진정한 인생을 반영해주길 바랐던 것이다. 이들은 의욕 있는 제작자들과 손을 잡고 이전의 제작 전통을 깨고 진정한 현실을 영화에 담아냈다.
대만인들은 스크린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과거와 마주치게 되었다. 이처럼 당시의 영화인들은 대만의 진정한 상황을 표현하려고 노력했고, 대만인은 누구인가, 중국인인가 아니면 다른 누구인가 등 신분과 정체성을 찾으려고 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허우 샤오시엔과 양 더창 같은 젊은 감독들은 사명감이 뛰어났다. 이것이 뉴 웨이브 영화의 첫걸음마였다.
양 더창에 이어 허우 샤오시엔의 이름이 올려진 옴니버스 영화 '샌드위치맨' 에서 뉴 웨이브의 진가는 더욱 높아진다.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사회파 사실주의 작가 황 춘밍의 단편소설들을 각색한 이 영화는 뉴 웨이브의 정신인 전실과 현실을 잘 보여준다. '샌드위치맨'에 나오는 단편들 가운데 청 좡샹이 연출한 '비키의 모자'는 지방을 돌며 일제 전자제품을 파는 세일즈맨과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경제 발전기의 뒷면에 있는 지방의 풍경을, 완런이 연출한 '사과의 맛'은 미 대사관 직원의 차에 치이고도 그들이 준 사과 맛에 황송해하기만 하는 가난한 가족을 통해 대만 민중과 미국의 관계를 직시한다. 그 중 허우 샤오시엔의 단편 '샌드위치맨'은 대만 영화 역사에서 분수령을 차지한다. 원제의 뜻은 '어린 아기의 커다란 인형'.
허우 샤오시엔은 대만 영화가 담지 않던 가난한 시골 서민의 생활을 다큐멘터리식으로 잡아나간다. 하지만 그 기록성 안에는 서정이 있고 웃음도 있다. 이후 허우 샤오시엔의 대명사처럼 된 서정적 리얼리즘의 출발점이 된 작품이 '샌드위치맨' 이다. 외국인에게는 대수롭지 않지만 '샌드위치맨'의 주목할 만한 특징 중 하나는 바로 대만어를 사용한 것이다. 장 제스의 군대가 온 후 대만 영화에는 북경어만이 쓰이고 있었다.
지금은 아동 연극 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원작자 황 춘밍도 '샌드위치맨'이 화제가 되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에서 영화화된 '칠수와 만수'의 원작이 그의 대표작인 '두 페인트공'이다.
21세기를 이끌 영화작가로 이미 인정받은 아시아 영화의 대가 허우 샤오시엔은 이렇게 자기반성부터 했다.
'샌드위치맨' 이후 '펑꾸이에서 온 소년' '인연풍진' '동년왕사' 등 성장을 소재로 한 일련의 영화로 낭트영화제 등에서 연거푸 수상하며 서정적 사실주의 스타일로 대만인의 삶을 그려낸 허우 샤오시엔. 그의 서정적 사실주의가 직접 역사와 만나 대만 뉴 웨이브의 총결산이라고 불리는 '비정성시' 를 만든 것은 1989년이다. 그 후 그는 현대사를 카메라로 옮기는 역사가가 되겠다는 자신의 포부대로 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3부작에 역사를 담았다. 이런 그가 다시 반성을 거쳐 현대의 대만에 도전하고 있다.
허우 샤오시엔의 궤적은 그대로 뉴 웨이브 영화의 발전과정을 반영한다. '비정 3부곡'에 이르기까지 그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영상에 담았다. 양 더창이 성장이라는 주제로 뉴 웨이브를 시작했듯 그도 같은 길을 걸은 것이다.
'인연풍진' 을 촬영한 곳인 대만 북부의 스펀. 이 작은 마을은 영화 덕분에 관광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이곳을 찾은 대만인들은 마을과 산을 향해 "허우 샤오시엔!" 하고 외치며 메아리를 부른다고. "왜 그 친구 이름만 외치고 내 이름은 안 부르는지 불만이다." 우 니엔전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허우 샤오시엔은 친구들과 만났고 서정적인 뉴 웨이브 전통을 세웠다. 그리고 그의 서정적 리얼리즘은 본격적인 대만 역사 3부작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영화를 만드는 창조력의 근본은 배움에서 나온다. 또 하나의 근본이 있다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열정이다. 열정은 당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다. 나는 어려서부터 소설을 좋아했고 희극, 고대시, 현대사들도 모두 읽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중국 전통의 가치를 배웠던 것 같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대만 문화의 원천에 대해서, 중국 전통문화에 대해서 깊은 감동을 하였다. 그 감동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겨난 것이고, 서서히 깊어지면서 나 자신도 느끼게 된 것이다. 그것을 느낀 다음에는 어쩔 수 없이 영화로 찍어나갈 수밖에 없다.
왜 나는 대만의 역사를 찍는가? 내가 대만에서 성장했고 대만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한국 영화를 찍는다면 반드시 한국인들의 관념, 가정구조, 일상적인 생활 습관, 남녀관계가 어떤지를 알아야 하고 무의식중에 그 모든 것들을 생각해야만 할 거다. 그런 이해 없이 영화를 찍는다면 한국의 비극을 코미디에 담는 것과 똑같다. 나는 대만의 생활을 이미 알고 있고 더욱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대만을, 대만 역사를 찍게 되는 것이다. (허우 샤오시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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